11/11/2025
평소부터 언제 죽더라도 미련이 없다는 각오를 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죽는 자리도 좋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평소부터 필사적인 각오로 살아간다면, 어찌 천박한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이 점을 항상 마음속 깊이 새겨두어야 한다.
또한 약 30년 전부터 세상의 분위기도 변해, 젊은 무사들이 모였을 때 나누는 이야기는 금전 이야기, 손익 계산, 가계 운영, 의복의 품평, 그리고 색욕에 관한 잡담 같은 것들뿐이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가 아니면 모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참으로 한심한 풍속이 되어버렸다.
옛날에는 스무 살에서 서른 살 정도까지는, 본래 마음속에서 그런 천박한 것들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입 밖으로 내는 사람도 없었다. 나이가 든 사람도 무심코 그런 말을 꺼냈다면, 곧바로 그것이 옳지 않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런 풍속이 생긴 것도 세상이 화려해지고, 생활에 관한 일들만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지위에 맞지 않는 사치를 부리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생활은 해나갈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 절약을 잘한다고 해서 가계 운영을 잘한다고 칭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가쿠레 #사무라이
05/06/2025
제주 출장, 빈야사 요가 수련
제주 출장 중,
유명 요가원은 요가 선생님들이 수련 하러 오는 분위기가
부담스러워 (요가깡패들 무서워)
리조트 근처 조용한 요가원을 찾았다
11시 30분, 빈야사 요가 시작.
처음엔 호흡 정리와 짧은 명상.
제주 새소리와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잡생각이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오늘 수업은 앉아서 하는 아사나로 시작.
처음 하는 아사나 여서 느낌이 달랐다. (좋았음)
빈야사의 흐름에 따라
몸과 호흡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버릇처럼 웃자이 호흡을 하려고 해서
정신 바짝 차리면서 호흡에 집중했다.
(습관이란..)
“요가는 몸이 아니라 마음의 유연성을 기르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몸이 유연해지고 싶다.
오늘 다시 한번 느낀 거지만
“전생에 요가를 했던 사람은 현생에서도 이어서 수련한다“ 는 격언을 좋아 하는데 오늘 따라 그 말이 괜히 실감났다.
익숙한 아사나를 반복하다 보니
마치 몸이 기억하는 듯 해 반가웠다.
수업 난이도는 부담 없고,
선생님이 동작마다 포인트를 짚어줘서
오랜만에 땀도 흘리고
편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
오늘 느낀 이 감각,
출장 끝나도 계속 이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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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매트 위에서 얻은 집중력과 여유.
“매일 조금씩, 그게 진짜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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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금손 , 사진 진짜 잘 찍으심! 감사합니다 ☺️
#제주요가 #숨쉬는고래 #요가 #유심회 #신화월드
19/05/2025
이케다야 전투는 정말로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방은 좁고, 적과 아군이 뒤섞여 난투극이 벌어졌다. 그들 중에는 손가락이 세 개, 네 개나 잘려 나간 자가 많았다. 칼을 막으려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피안개가 자욱했고, 다다미는 피로 물들어 발밑이 미끄러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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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야 사건 후, 현장에 들어간 관리의 증언에 따르면, 방 여기저기에 베어져 떨어진 손가락과 손이 굴러다녔다고 한다. 다다미는 피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전투의 격렬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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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야 사건 당시, 신선조는 상대의 칼을 막으려는 손이나, 도주를 막기 위해 손을 잡으려는 순간을 노려 칼을 휘둘렀다. 그 결과 손가락이 잘려 나가는 일이 많았고, 이는 당시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장면이었다.
위 내용은 가장 최근의 일본도를 휘둘러서 피맛을 본 신선조 관련 내용들 중에서 좁은 공간에서 싸웠던 이케다야 사건에서의 사료다.
좁은 방안에서 다수의 인원이 칼로 싸우는데 신선조는 상대의 무장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서 손과 손목을 집중적으로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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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에서 손목을 노리는 이유
무기를 잡은 손을 공격하면 상대방의 무기를 떨어 트리게 할수 있고 손가락이나 손목을 베면 출혈과 통증으로 상대방이 더이상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됨
갑주를 입어도 신체의 주요부위는 보호가 되지만 상대적으로 손과 손목은 노출이 되어 공격의 표적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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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의 곡선형 날은 베기에 특화 되어 있고 손목 손가락은 뼈가 얇고 힘줄이 많아 칼날이 스치드 지나가도 쉽게 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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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칼을 막을 때, 그 손목을 베어 떨어뜨리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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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손을 베어 칼을 떨어뜨리게 하는 것은 전장의 상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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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손목을 겨누어 베어라. 손을 잃으면 적은 싸울 의지를 잃는다
전국 시대에와 에도 시대에도 "손가락이 잘려 무기를 떨어트렸다" 라는 사례가 자주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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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창을 막을 때, 그 손을 베어 떨어뜨리고 창을 빼앗는 일이 자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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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베이면, 아무리 강한 자라도 싸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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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손목을 베는 것이 전장의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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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일부를 희생해서라도 손을 지켜라”, “적의 손을 노려라” 등, 손의 중요성과 실전 전술이 자주 언급됨
#新選組 #손 #손목 #사무라이 #유심회 #신선조 #무술
11/04/2025
”복수의 자세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길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싸움에서 복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무사로서의 치욕이라며 경멸받은 일이 있었다. 복수를 하려면 단지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적에게 베이고 죽기까지 싸우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치욕은 남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를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준비가 늦어지고, 상대가 다수라며 변명하며 시간을 끌다가 결국에는 ”그만두자“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상대가 몇 천 명이라도 상관없다. 한 명씩 모조리 베어버리겠다는 기세로 달려든다면, 그것만으로 복수의 의도는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대체로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아코 낭사의 복수는 센가쿠지(泉岳寺)에서 할복하지 않은 것이 실수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주군이 죽고 적을 처단하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 만약 그 기간에 기라 요시히사(吉良殿)가 병으로 죽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상급 지방의 사람들은 잔머리를 잘 굴려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일은 능숙하지만, 나가사키 싸움처럼 무모한 행동은 하지 못한다.
또한 소가 형제의 복수도 많은 세월이 걸렸다. 가와즈 주로스케나리(河津十郎祐成)가 예상치 못한 실패를 한 것은 불운이었다. 그러나 이때 고로(五郎)의 말은 매우 훌륭했다. 일반적으로 이런 비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이것 또한 무사도로서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미리 충분히 생각을 다듬어 두지 않으면, 막상 중요한 순간에 판단을 잃게 되어 치욕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읽는 것도 바로 그때의 결단을 내리기 위한 준비다. 특히 무사도는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각오를 가지고, 아침저녁으로 항목을 세워 생각을 다듬어야 한다.
승부는 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치욕을 당하지 않는 행동 방식은 또 다른 문제다. 죽을 각오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설령 그 자리에서 패배하더라도, 곧바로 복수하면 된다. 복수를 하는 데에는 지혜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강한 자라 불리는 사람은 승패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외모나 체면을 신경 쓰지 않으며 오로지 죽음을 향해 돌진한다. 거기에서 진정한 자신이 되살아난다.
적을 베겠다고 각오를 다졌다면, 잠시라도 망설이며 바로 행동하지 않고 ”이 방법이 잘못될 수도 있으니 돌아가는 길을 택하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느슨해지고, 대부분의 경우 행동에 옮기지 못하게 된다. 무사도는 경솔할 정도로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기상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가와카미무라(川上村)의 실소인(実相院)에서 법회가 열리던 날, 배 안에서 그 사람의 소년 시종이 술에 취해 배사공과 다투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시종은 칼을 뽑아 들고 덤벼들려 했지만, 사공이 먼저 노로 그의 머리를 때렸다. 그때 주위에 있던 다른 사공들도 노를 들고 몰려와 ”때려눕혀라!“라며 덤벼들었다. 그런데 그 주인은 그 광경을 보고도 모른 척 지나쳐 갔다.
결국 주인을 따르던 또 다른 시종이 어쩔 수 없이 혼자 돌아가 사공들에게 사과하고, 여러모로 달래며 술에 취한 시종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밤, 그 술 취한 시종은 칼을 빼앗기고 낭인이 되라는 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주인 된 자는 우선 배 안에서 술 취한 시종을 꾸짖고, 사공을 달래야 했다. 그리고 비록 이쪽에 잘못이 있었다 하더라도, 무사가 머리를 맞았다는 것만으로도 사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사과를 핑계 삼아 상대에게 다가가 사공을 베어버리고, 동시에 술 취한 시종까지 베어버리는 것이 진정한 주인의 행동이다. 이 주인은 참으로 믿음직스럽지 못한 남자다.
#무사도 #무술 #유술 #유심회
10/04/2025
오키 데츠잔(大木鉄山)은 노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유술은 스모와 달라서, 겨루다가 아래로 눌린 상태가 되더라도 나중에 이기면 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최근에 문득 깨달은 것은, 만약 내가 아래로 눌려 있는 동안 누군가가 와서 중재에 들어간다면 그 순간 패배로 간주될 것이다. 결국 처음부터 이기는 것이 끝까지 승리하는 길이다.”
재판이나 논쟁이 벌어졌을 때, 빠르게 패배하는 것이 오히려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스모와 비슷하다. 승리에만 급급해 비열한 방법으로 이긴다면, 그것은 패배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더럽게 패배하는 경우로 평가받는 일이 많다.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항상 승리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기회를 놓치지 않는 법만 익혔을 뿐이다.”
이 말은 매우 흥미롭다. 하인들도 기회를 놓치면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그처럼 그 순간의 행동과 대응은 마음 깊이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무술 #유술 #스모 #고류유술 #유심회
25/02/2025
또 들으니, 왜적이 영남 지역 반가의 여인 중 얼굴이 고운 사람을 뽑아 다섯 척의 배에 가득 실어 제 나라로 보내 빗질하고 화장을 시켰는데, 순종하지 않으면 대번에 노하기 때문에 모두들 죽음이 두려워 억지로 따른다고 한다. 이들은 사실 여기서 먼저 겁탈한 뒤 보낸 여자들이다. 그 뒤에도 그들의 뜻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여러 적이 돌아가면서 강간한다고 하니, 더욱 비통한 일이다. 이는 이 고을 복병장 김성업이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온 사람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라고 하니, 분명 헛말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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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김천 전투에서 어떤 여인이 왜적의 포로가 되어 창고에 갇혀 있다가 전투가 끝난 뒤 밖으로 나와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그 여인에게 사는 곳을 물었더니, 처음에는 숨기고 말하지 않다가 이실직고했다고 한다. 본래 성주에 사는 선비의 아내로, 흉적이 갑자기 마을로 들이닥쳐서 외숙모와 함께 피하다가 적에게 잡혀 이곳으로 왔는데, 적들이 돌아가며 강간을 하자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하려다가 뜻대로 되지 않았고 외숙모의 생사도 모른다고 했다. 허리에 찢긴 치마만 걸쳐 있을 뿐 속옷도 입지 않았는데 우리 군사들이 치마를 들춰 보니 음문이 모두 부어서 잘 걷지도 못 했다고 한다. 아주 참혹한 일이다. 고을 사람 중에 군대를 따라갔던 자가 직접 보고 와서 전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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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3년 7월 7일) 또 어제 오는 길에 7,8세 되는 아이를 보니 큰 소리로 통곡하고 있고 여인 하나는 길가에 앉아서 역시 얼굴을 가리고 슬피 울고 있었다. 괴이해서 그 까닭을 물어보니 대답하기를, 지금 내 남편이 우리 모자를 버리고 갔다고 한다. 무엇 때문에 버리고 갔느냐고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세 사람이 떠돌면서 걸식했는데 이제는 더 빌어먹을 곳이 없어서 장차 굶어 죽게 되었으므로 내 남편이 우리 모자를 버리고 갔으니 우리 모자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어서 우는 것이라 한다. (...) 슬프다, 창생이 장차 다 없어지고 하나도 남지 않으려는가. 탄식함을 이기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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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꾀죄죄한 여자아이가 길을 떠돌고 있길래 물어보니 부모님은 왜놈들이 데려가 연락이 끊겼고 고모 집에서 살다가 고모는 자식들만 데리고 떠났다고 한다. 어제는 동생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너무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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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4년 2월 14일) 길에서 굶어 죽은 시체를 거적으로 말아서 덮어둔 것을 보았는데 그 곁에 두 아이가 앉아서 울고 있다. 물었더니 그 어미라 한다. 어제 병으로 죽었는데 그 뼈를 묻으려 해도 비단 제 힘으로 옮길 수 없을뿐 아니라 또 땅을 팔 도구를 얻을 수가 없다고 한다. 조금 있다가 나물 캐는 여인이 광주리에 호미를 가지고 지나가므로 두 아이가 말하기를, 그 호미를 얻으면 땅을 파고 묻을 수 있다고 한다. 슬픔과 탄식스러움을 이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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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윽이 들으니 영남과 경기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일이 많아서, 심지어 육촌의 친척도 죽여가지고 씹어 먹는다 하기에 항상 상서롭지 못하다고 했더니, 이제 다시 들으니 서울 근처에서 전일에는 비록 한두 되의 쌀을 가진 자라도 죽이고 빼앗는데, 근일에는 사람이 혼자 가면 쫓아가서라도 죽여놓고 먹는다.
#임진왜란 #쇄미록 #일본 #왜군
22/02/2025
진검을 들고 실전이 벌어 지면 상대방의 칼이 이렇게 들어 오면 칼을 걷어내고 그틈을 이용해 이쪽 방향으로 찌른다거나 하는 설정은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무아지경으로 칼을 휘두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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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된 후에 근처에서 검도를 연습하는 사람이 나무 가지에 양철 물통을 끈으로 묶어두고 찌르기 연습을 하는 것을 보고는,
’찌르기는 그냥 빨리 정확하게 찌르면 되는게 아니고 찌른 후 민첩하게 회수하는 동작이 중요하다‘
’한번으로 죽인다는 생각을 하지마라. 몇번이고 다시 찔러라, 난 1명 죽이는데 평균적으로 3번 정도 찔렀다‘라는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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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검을 쥐고 양철 물통을 찔렀는데, 허공에 끈 하나로 매달린 물통이 그대로 꿰뚫렸다는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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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뒤에 숨어 있다가 귀가하는 자식들을 죽도로 내려치면서 ”무사의 마음가짐이 안 되어 있다!(士道不覺悟!)“라든가,
”문에 들어가면서 머리부터 들이밀면 기습당했을 때 치명상을 입는다! 발부터 들이밀어라!“라고 설교했을 정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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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타의 검은 맹자(猛者)의 검이라면 사이토의 검은 무적(無敵)의 검이다.
마지막 사무라이 신선조 3번대장 사이토 하지메
(참고로 3가지의 유파(무술)을 배운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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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무사도 하나의 무술만 파는 건 없음.
실전과 카타(형)는 구분 되어짐.
(카타가 필요 없다는게 아니라 카타를 익히고 실전에서 내가 쓸 수 있게 다시 연구가 필요함)
무기를 다루는건 이치가 없다는것.
(일전에도 쓴 글이지만 검의 합기 같은건 없음, 실제로 일본에서는 검 잡는 방법은 다 각기 다름, 마치 카라테에서 주먹 쥐는 방법이나 지르는 방법이 다른것처럼)
근현대 무술과 고류 검술이 궁합이 좋다면 현대에 와서 현대 무술에 맞게 검술을 재조합 한것일뿐.
#검술 #검 #무술 #유술 #신선조
20/02/2025
칼집 수축으로 인한 전투 불능
겨울 전투에서 칼집이 수축된 병사는 칼을 뽑지 못해 ”막대기(칼집)으로 적을 때리다“ 사망
(목검과 진검의 차이를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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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에 의해 수축된 나무 칼집은 칼을 완전히 꽉 잡아 긴급 시 뽑기 어려움.
일부 병사는 ”칼집을 불에 살짝 데워 팽창시킨 뒤 사용하라“는 극단적 조언을 받았으나,
전장에서는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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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太刀)의 칼집은 말 탄 상태에서 휘두르기 편리하도록 곡선형으로 제작되었으나, 보병전에서는 칼이 칼집에 꽉 끼어 뽑히지 않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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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이 뽑히지 않을때는 주먹으로 때리라는 조언
(왜 무기가 있는데 주먹을 단련 하냐는 말에 대한 근거, 지난번 카라테 편에서도 적었지만 주먹 단련은 최후의 수단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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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대금은 칼집 입구에 걸려 뽑을 때 방해가 됨. 특히 협차(脇差)의 대금이 말 안장에 걸려 말까지 다치는 사례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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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병사는 적에게 밀려 넘어지며 협차를 뽑으려 했으나, 대금이 갑옷 끈에 걸려 실패.
결국 적의 창에 찔려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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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갑옷을 입은 상태에서 칼자루가 미끄러지면 뽑는 데 실패할 수 있음
이를 방지하기 위해 ”칼자루에 거친 천을 감으라“
(비오는날 뿐만 아니라 현대 검도처럼 느슨한 잡기가 아닌 칼을 꽉 잡는 방식도 사용하는 유파도 있음
칼을 놓치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되어 버려서 그런거 같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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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차 활용 : 주무기(창, 철포)를 잃은 후 협차를 사용할 때는
”배나 허벅지를 찌르고 목을 자르라“
(대부분 갑주로 인하여 레슬링 형태로 엉경 붙었고 갑주로 틈새를 찌르는 사람이 이김)
(결국 현대의 대동류 합기유술 이후의 기술들은 소도쯤으로 생각하는게 타당하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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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反り이 적은 칼:
평화기에 유행한 반면 없는 칼은 칼집에 단단히 고정되지 않아 전투 중 흔들림
이는 ”칼이 허리에서 흘러내려 다리를 베는“ 사고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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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반면:
반면이 강한 태도(太刀)는 기마전에 최적화되었지만, 보병전에서는 칼집에서 뽑는 데 시간이 더 걸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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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차기:
칼을 허리 앞쪽에 차면 재빠르게 뽑을 수 있지만, 달리기나 구르기 시 다리에 걸려 넘어질 위험이 있음
”적과 마주칠 땐 앞차기가 유리하지만, 도망칠 땐 뒤차기를 선택하라.“
뒤차기:
칼을 허리 뒤쪽에 차면 움직임이 자유로웠으나, 뽑을 때 팔이 뒤로 젖혀져 반응 속도가 느림
허리 뒤 차기의 치명적 실수
한 소대장은 칼을 뒤차고 있다가 적의 기습을 받아 뽑는 데 실패
이후 ”앞차기로 습관을 바꾸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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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 위에 차기:
갑옷 위에 칼을 차면 칼집이 헐거워져 뽑기 쉽지만, 갑옷 끈과 칼집이 엉켜 움직임이 제한
권장 방식: ”갑옷을 입기 전 허리에 칼을 차고, 그 위로 갑옷을 입으라.“
갑옷 안에 차기:
칼을 갑옷 안에 차면 움직임이 편했지만, 긴급 시 뽑는 데 실패할 확률이 높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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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칼(타치)과 협차의 조합:
주 칼은 허리 오른쪽, 협차는 왼쪽에 차는 것이 표준
그러나 좌우 전환 없이 한쪽에 모두 차면 균형이 무너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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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상황:
말을 탄 상태에선 협차를 안장 옆에 매달아 빠르게 뽑을 수 있도록 했음
#검술 #검 #검도 #무술 #일본 #왜군
17/02/2025
전투 전 점검:
”끈(紐)이 헐거워지지 않았는지 확인하라. 풀렸을 땐 이빨로 물고 다시 묶어라.“
”허리띠(帯)는 단단히 조여 움직임에 방해되지 않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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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 틈새 방어:
”목덜미(首)와 겨드랑이(脇)는 방어가 약하므로, 방패나 소매로 가려라.“
비 오는 날: ”갑옷 밑에 기모노를 두껍게 입어 미끄러짐을 방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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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두르기 vs. 찌르기:
”적의 갑옷 틈새(脇腹, 목덜미)를 노려 찌르는 것이 효과적이다. 넓은 범위를 휘두르면 체력 소모가 크다.“
창병과의 협공 시: ”창으로 적의 방어를 흐트러뜨린 뒤, 칼로 마무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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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공간에서의 싸움:
”협소한 길목에선 칼을 반으로 잡고(半身構え), 아래에서 위로 올려베는 기술(逆風)을 사용하라.“
말 탄 적 상대:
”말의 다리를 노려 베어 넘어뜨린 후, 땅에 떨어진 적을 찌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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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에서의 생존 기술:
”갑옷을 벗고 강을 건널 땐, 칼을 입에 물고 헤엄쳐라.“
(※위험한 기술로 비상시에만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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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을 입은 적 상대법:
”철포나 활로 거리를 두고 틈새를 노린 뒤, 근접해 칼로 마무리하라.“
”적이 넘어졌을 땐 갑옷의 등 부분(背板)을 밟아 움직임을 봉쇄하라.“
(세키구치신신류에서 일어 나는 독특한 방법에 대한것이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왜군 #일본 #잡병물어 #임진왜란 #사무라이
16/02/2025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개와 고양이조차 피를 흘릴 수 있는 것은 모두 죽였다. - '요시노 진고자에몬 각서' 임진왜란 기록 중
1592년 4월 14일, 임진왜란의 첫 번째 전투인 부산진성 전투가 벌어졌다. 일본군 선봉대 1만 8천여 명이 부산 앞바다에 도착했고, 이를 지키던 부산진첨사 정발(鄭撥)과 조선군 약 500~600명이 목숨을 걸고 맞섰다. 하지만 압도적인 병력 차이와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의 기습으로 인해 부산진성은 함락되었고, 정발을 포함한 대부분의 수비군이 전사했다.
그러나 정발이 무능해서 부산진성을 쉽게 내줬다는 오해가 있다. ‘선조실록’에는 그가 절영도에서 사냥을 하다가 일본군을 조공 사신으로 착각하여 대비하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선조수정실록에 따르면, 정발은 사냥이 아니라 군사훈련을 하고 있었으며, 일본군이 상륙하자 급히 복귀해 끝까지 성을 사수했다. 그는 군사와 백성들을 모아 결사항전을 펼쳤고, 화살이 떨어질 때까지 저항하다 끝내 전사했다.
당시 일본에서 포교 활동을 하던 포르투갈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1532~1597)는 그의 저서 ‘일본사’에서 조선군이 용감하게 싸웠다고 기록했다.
그에 따르면, 고니시 유키나가(가톨릭 세례명: 아우구스티노)는 조선군에게 목숨을 보장할 테니 항복하라는 전갈을 보냈으나, 조선군은 비웃으며 "왕에게 물어보고 오겠다"고 답하며 시간을 벌었다. 이후 조선군은 철저히 전투를 준비했고, 일본군이 해자(성벽 바깥의 도랑)를 건너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프로이스는 “조선군은 대단히 충성심이 높고 용감하게 싸웠으며, 대부분 끝까지 저항하다 전사했다. 가장 먼저 전사한 이는 조선군 총대장이었다”고 기록했다. 일본군조차 조선군의 저항에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일본군이 부산진성을 함락한 뒤, "군신(軍神)의 혈제(血祭)"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전쟁의 신에게 피로 바치는 제사라는 뜻으로, 전장에서 흘린 피를 일종의 신에게 바치는 의식처럼 여겼다는 의미다. 일본군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을 저질렀고, 심지어 개와 고양이까지 죽이며 잔혹한 대학살을 벌였다.
부산진성과 동래성에서 벌어진 조선군의 필사적인 저항은 명나라가 조선을 의심하는 것을 막는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 당시 명나라는 조선이 일본과 내통하여 자신들을 공격하려 한다고 의심했지만, 조선군이 일본군과 처절하게 싸웠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해가 풀렸다.
이후 1597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황신(黃愼)이 명나라 사신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부산진성 전투에 참전한 일본 장수 야나가와 시게노부(柳川調信)가 “부산에서 조선군의 저항이 너무 거세 우리는 크게 기세가 꺾였다”고 증언했다. 그는 정발과 그의 첩 애향이 끝까지 싸우다 전사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일본군은 100년간의 전국시대를 거치며 전투 경험이 풍부했고, 조총이라는 신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조선군이 방어를 준비했어도, 압도적인 전투력 차이를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부산진성은 왜란 직전 성벽을 높이고 해자를 깊게 팠지만, 결국 방어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일본군조차 부산진성을 방어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후에 더 튼튼한 자성(子城, 현재의 부산진성)을 새로 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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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024
마키와라: 기본기 수련의 정수주먹 단련의 진정한 목적은 단단한 손이 아니라 정권지르기의 완성입니다. 굳은살과 짓물은 과정일 뿐, 꾸준한 훈련을 통해 건강한 손을 얻습니다. 강력한 주먹은 올바른 기술과 반복된 훈련의 결과입니다.마키와라(巻き藁)는 손을 변형시키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정권지르기를 위한 수련 도구입니다.
이를 통해 올바른 자세와 힘 전달 방법을 익힐 수 있습니다. 마키와라는 일본어로 ’감긴 짚단‘을 의미하며, 18세기 후반 류큐왕국 시대부터 사용되었습니다.마키와라 훈련의 오해: 많은 이들이 단순히 손을 딱딱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하지만, 잘못된 자세로 훈련하면 부상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자세와 힘의 전달이 중요합니다.삼전(三戦) 카타는 중국 무술에서 기원한 기술로, 오키나와에서 주먹을 사용하는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카타는 각 무술의 기본기를 체계적으로 익히는 중요한 유산입니다.과거 류큐 왕국에서는 무기 사용이 제한되면서 맨손 무술이 발달하였고, 마키와라 훈련도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했습니다.마키와라 훈련은 기본기 수련의 핵심이며, 기본기를 소홀히 하면 무술의 본질을 잃게 됩니다.
마키와라를 사용하는 이유는 기본기의 완성과 정확한 힘 전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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